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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여성독립운동가 만나러 오세요

  • 대한민국 100년의 뿌리인 충북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됐다. 남성 중심의 독립운동사에 가려 오랫동안 조명되지 못했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하는 자리가 전국 최초로 마련됐다. 이들은 독립에 대한 열망 하나로 민족의 아픔을 끌어 안은 채 불꽃같은 삶을 불태웠다. 광복을 맞이한 8월, 자녀들과 함께 충북의 여성독립운동가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청주시 상당구 목련로 27(방서동 649-1)에 위치한 충북미래여성플라자 A동 1층에 자리잡은 충북여성독립운동가 전시실. 이곳에는 한말 최초 여성의병장이었던 윤희순을 비롯해 10명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흉상이 전시돼 있다. 흉상과 함께 생애연대, 당시 활동이 기록된 자료들, 또 각 독립운동가에 관련된 기록들도 함께 만날 수 있다. 한쪽 벽면에는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영상도 함께 상영되고 있다. 충북여성독립운동가 전시실은 8월 3일 온라인 개막을 시작으로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전시 관람은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가능하다. 월요일과 설날, 추석은 휴관한다. 전시실에 마련된 충북여성독립운동가들을 한분 한분 만나보자. 한말 최초 여성의병장 - 윤희순(1860.06.25.~1935.08.01.) 본적은 충북 중원군(현 충주) 엄정면 신만리 740으로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1895년부터 1908년까지 춘천 등지에서 의병 투쟁에 참여했고 1911년 만주로 망명해 시아버지와 남편의 독립운동을 내조하며 지속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굽히지 않는 만세운동의 투사 – 어윤희(1880.06.20.~1961.11.18.) 충주시 소태면 덕은리에서 태어나 1984년 결혼 3일만에 남편이 동학군으로 집을 떠나 전투 중 전사한다. 이후 1919년 2월 자진해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이로 인해 서대문감옥에 투옥됐다. 그 안에서도 3.1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단재 신채호의 뜨거운 동지 – 박자혜(1895.12.11.~1943.10.16.) 1916년부터 1919년초까지 조선총독부 의원 간호부로 근무했다. 이후 일본인의 간호는 하지 않겠다며 3.1운동 부상자를 치료하고 ‘간우회’ 조직을 만들어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됐다. 1920년 신채호를 만나 결혼하고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남편 신팔균과 함께 독립운동 – 임수명(1894.02.15.~1924.11.02.) 본적은 충북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신팔균 장군을 만나 1914년에 결혼했다. 신팔균이 베이징으로 망명하고 임수명은 항일비밀문서의 연락과 배포 등을 후방에서 지원했다. 1924년 남편의 전사 사실을 알고 자결해 순국했다. 독립자금 모집의 주역 – 이화숙(1893~1978) 최초의 이화학사로 1919년 대한애국부인회(상하이) 총회에서 회장이 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해 국무원 참사로 임명됐다. 대한적십자회가 설립한 간호원양성소 1기 졸업자로서 자금을 모금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여성독립운동단체 통합 주역 - 연미당(1908.07.15.~1981.01.01.) 충북 괴산군 연병환의 장녀. 1927년 김구를 보좌하던 엄항섭과 결혼 후 여성독립운동계 공동 항일연합전선 구축 운동을 주도했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공원 의거때 도시락 폭탄을 보자기에 싸줬다고 전해지고 있다. 임시정부 안살림 꾸려 나가 – 오건해(1894.02.29.~1963.12.25.) 청주시 보성오씨 집성촌 출생으로 추정되며 임시정부 재무차장을 맡았던 신건식과 결혼했다. 1926년 딸 신순호와 함께 남편이 있는 중국 상하이로 가 임시정부 안살림과 독립운동가 지원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로 평생을 보냈다. 부모님과 함께 독립운동 – 신순호(1922.01.22.~2009.07.30.) 신건식, 오건해의 장녀로 충북 청원군 가덕면 인차리에서 태어났다. 1940년 9월 한국광복군 창군때 여군으로 입대해 총사령부에 근무했다. 해방후 고향의 가덕중학교에 사재로 ‘삼강도서관’을 건립해 기증했다. 한국광복군에서 활동 - 신정숙(1910.05.12.~1997.07.08.) 독립운동가 신조준의 딸로 태어나 음성 출신 장현근과 결혼했다. 남편이 독립운동 중 잠적하자 남편을 찾아 중국으로 가 조선의용대에 참여했으며 김구의 비서로 근무했다. 1940년 한국광복군에 입대해 징모처 제3분처 위원 및 회계조장으로 활동했다. 조선 노동자 항일의식 일깨워 – 박재복(1918.01.28.~1998.07.18.) 충북 영동군 심천면 초강리 빈농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1934년부터 1938년까지 군시제사 주식회사 대전공장에서 근무 후 대전 본정 1가 양만지 상점 점원으로 근무하면서 여성 노동자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취하는 발언을 하다가 체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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