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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해양 실크로드의 타임캡슐 신안보물선, 남은 이야기들

  • 1970년대 신안보물선의 수중발굴은 ‘보물선 신드롬’을 일으켰다. 신안보물선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중발굴이었다. 신안보물선이 발굴되기 전까지 수중고고학은 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학문이었다. 신안보물선은 약 10년간 발굴했다. 출수*유물은 신안보물선 선체와 중국 송·원시기의 도자기 등 2만 4,000여 점이다. 발굴 결과는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중세 해양실크로드를 실물로 증명하고, 국제교류를 뒷받침하는 ‘타임캡슐’이었다. 현재까지도 세계 수중고고학의 중요 발굴로 소개되고 있다. * 고고학에서는 출토라는 용어를 쓴다. 수중고고학도 출토가 혼용되다가 현재는 대부분 출수로 표기한다. 신안 해저발굴 해역(ⓒ신안군) 신안보물선의 수중발굴은 군관이 협력한 세계에서 보기 드문 발굴이었다. 신안보물선이 발굴된 위치는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방축리’ 해역이다. 증도는 전남 목포에서 서북쪽으로 약 40km 거리에 있는 섬이다. 이곳에서 북으로 임자도가 마주하고 있다. 침몰지역은 물살이 빨라 항해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곳에서 중국 도자기가 1975년 8월경 확인되었다. 고기잡이하던 어부 그물에 중국 도자기 6점이 걸려 올라왔다. 이를 계기로 신안보물선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신안보물선의 발굴을 위해 1976년 문화재관리국, 국립중앙박물관, 해군해난구조대(SSU) 등으로 합동조사단을 구성했다. 바다에서 조난 등 사고 수습을 하는 해군해난구조대가 발굴조사 현장에 투입된 것은 당시 고고학자는 잠수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현재 태국 등 일부 국가에서 해군이 수중발굴에 참여하지만 당시만 해도 해군이 수중발굴에 참여한 경우는 극히 이례적으로 세계 수중발굴에서도 드문 예이다. (左) 신안보물선 수중발굴을 지휘한 해군 함정(ⓒ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右) 지치삼년 토후쿠지 목간(ⓒ국립중앙박물관) 1976년 10월 26일 해군의 협조를 받아 우리나라 수중발굴의 서막을 알리는 제1차 수중발굴조사(1976.10.26.~11.2.)가 시작되었다. 이후 1984년까지 9년간 모두 11차례의 수중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발굴 현장은 시야가 좋지 않고, 조류가 빠른 열악한 조건이었다. 발굴 해역은 북위 35°01′15″, 동경 126°05′06″에 위치한다. 수심은 평균 20m 정도이다. 수심은 밀물과 썰물에 따라 4m 정도 차이가 있다. 물의 흐름이 없는 시간은 15분 정도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밀물과 썰물이 바뀐다. 발굴은 밀물과 썰물이 바뀌는 시간에 주로 이루어졌다. 정밀한 수중발굴조사를 위해 1977년 제3차 발굴(1977.6.27.~7.31.)부터 바둑판 모양의 그리드를 설치했다. 육상고고학과 같이 조사결과를 도면상에 기록했다. 수중제토는 액체에 공기를 주입할 때 밀도가 낮아지는 현상을 이용하여 물을 퍼 올리는 방법인 에어리프트(Air Lift) 방법으로 개흙을 제거했다. 이후 유물을 수습하고, 배 위에서 수중상황을 구두로 듣고 실측했다. 해군이 유물을 발굴하고, 고고학자가 유물을 정리했다. 특히 제4차 발굴(1978.6.16.~8.15.)은 청자, 균요 등 5,406점과 지치삼년(至治參年, 1323) 목간이 출수되었다. 지치삼년은 중국 원(元)시대 연호이다. 이는 신안보물선이 중국 원 시대 선박임을 밝혔다. 선체는 제6차 발굴(1980.6.5.~8.4.)부터 제11차 발굴(1984.9.13.~9.17.)까지 마무리했다. 신안보물선에서 발굴된 유물은 중국 송·원대 유물이 대부분이다. 유물의 수량은 2만 4,000여 점에 달한다. 종류는 도자기 2만여 점, 금속품 1,000여 점, 자단목 1,000여 점, 향신료, 약제품, 석제품, 목제품, 유리·골각제품 등 다양하다. 그 외에 다량의 동전도 출수되었다. 청자매병·청자베개·청동숟가락 등 고려 유물도 발견되었다. 일본과 관련한 유물은 세토(瀨戶)매병·나막신·칼코 등이 있다. 이는 당시 해양실크로드 교역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특히 대량으로 출수된 도자기는 발굴 당시 세계 수중고고학 사상 유례가 없었다. 도자기는 룽취안요(龍泉窯) 등 중국 여러 지역에서 만들어졌다. 유물은 당시 해상운송의 규모를 말해 준다. 또한 해양실크로드를 통해 경제적인 교류가 활발하였음을 보여 준다. (左) 선체 복원이 완료된 신안선(ⓒ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右) 신안보물선에서 출수된 도자기(ⓒ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로 밝혀진 신안보물선의 의미 신안보물선은 연구 결과 중국 배로 밝혀졌다. 신안보물선이 알려 주는 의미를 몇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목간이 출수되어 국적과 절대연대를 확인했다. 목간 중 ‘지치삼년(至治參年)’은 중국 원나라 영종 3년(1323)이다. 이는 연호로 국가와 연대가 확인된 것이다. 동복사(東福寺) 목간은 신안보물선에 실렸던 물품의 최종 목적지가 일본 교토(京都) 도후쿠지(東福寺)임을 밝혔다. 둘째, 신안보물선의 구조이다. 잔존 신안보물선의 크기는 길이 28.4m, 너비 6.6m이다. 선체 내부는 7개의 격벽(隔壁)과 8격창(隔艙)으로 나눠졌다. 신안보물선은 배 밑부분이 ‘V’자 모양으로 뾰족한 첨저선(尖底船)으로 중국 푸젠(福建)성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푸젠 지역은 바다 수심이 깊어 첨저형 배를 만들었다. 그리고 푸젠 지역에서 배를 만들 때 무사 항해와 안녕을 기원하는 보수공(保壽孔)*이 용골(龍骨)**이음부에서 발견되었다. * 중국 푸젠 지역의 독특한 제작 방식이다. 배의 맨 아랫부분 용골의 이음부에 동전·동경을 넣었다. 동전은 북두칠성 모양으로 배치하여, 무사 항해를 기원하였다. ** 선체의 맨 아랫부분에 있다. 선박의 척추 역할을 한다. 용골에 외판과 격벽(칸막이)을 만들면 선체의 기본 형태가 만들어진다. 셋째, 신안보물선은 중세 동아시아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결정판이다. 신안보물선의 출수 유물은 대부분 중국 유물인데, 기타 무역품도 중국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수입해, 중간무역을 한 제품이다. 또한 일부 고려·일본 유물이 실려 있어서 국제무역이 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중세 동아시아 해양실크로드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그 외에도 유물을 통해 항로, 조선사, 미술사, 국제무역, 경제사, 도자사, 생활사 등을 가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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