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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숨결까지 기록하라

2019-11-26

문화 문화놀이터


기록 문화의 강국을 증명하는 우리의 유산
왕의 숨결까지 기록하라
'승정원일기'

    『승정원일기』를 보노라면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이 절로 솟아난다. 수많은 세계기록 유산들 중에서 이보다 방대한 기록물이 없으니, 일단은 분량에 놀라지만 그 다음은 무궁무진한 콘텐츠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당대를 복원할 역사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통사회 모든 분야의 문화콘텐츠 총아로 군림할 수 있는 풍부한 내용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되는 일기(日氣)와 각종 천문현상들, 일상적으로 체크 되는 국왕의 건강기록과 탕약(湯藥) 처방 기록들, 각종 궁중 연회에 쓰이는 음악이나 음식은 물론 당대 최고의 문화 현상에 대한 기록들······.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그 활용 방법의 끝을 알 수 없으니, 승정원일기야말로 우리 문화콘텐츠 산업의 보물창고임이 틀림 없다.
 

(左)국보 제303호 승정원일기(천계 2년 3,4,5월 일기 겉표지와 속지). 조선시대 국왕의 비서 기관인 승정원(承政院)에서 왕명의 출납, 각종 행정사무와 의례(儀禮) 등에 관해 기록한 일기이다.
(右)규장각에 보관된 승정원일기
 
승정원이란?
    승정원은 조선조 통치행위의 모든 기밀을 취급하던 국왕 비서실인데, 2대 임금 정종 때에 설립되었다. 오늘 날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 수행을 위해 비서실에서 보좌하듯이, 조선시대 승정원 또한 국왕의 왕명 출납 기능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민주사회에서는 입법기구가 따로 있어, 대통령이 지시하고 명령한다 해도 바로 법적인 성격을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왕조국가인 조선시대에서는 국왕이 판단하고 결정 내려 명령을 하달하면 그것이 곧 법이었다. 그러니 국왕의 명을 들이고 내보내는 일이 매우 중요했고, 이를 맡아 처리하는 곳이 바로 승정원이었다. 이곳에는 6명의 승지(承旨)들이 각 업무를 분담하는데, 당시 정부 조직체가 6조(이·호·예·병·형·공)로 나눠져 있었기 때문이다. 왕에게 보고되거나 하달되는 모든 사안들은 승정원 승지를 거쳐야 했고, 교대로 근무하는 정7품의 주서(注書) 2명이 이를 빠짐없이 기록해야 했다. 그러하니 주서는 사관(史官)을 겸하는 벼슬인 셈이다.
 
국보 제249호 동궐도에 나타난 선정전
 
왕의 숨결까지 담아낸 288년간의 기록물, 『승정원일기』
    승정원 주서가 기록한 일기는 통상 한달 치 분량으로 묶는다. 『승정원일기』의 구성을 보면, 날짜와 날씨, 재직 승지와 주서 명단인 좌목(座目)에 이어 임금의 동정을 기록하는데, 어느 궁에 거처하며 경연(經筵) 상참(常參:아침조회)을 주재하였는가를 기록한다. 그런 후 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실 어른들에게 드리는 문안 인사, 각 부처에서 올리는 업무 보고는 물론 경연에서 논의된 다양한 내용, 각 관청에 내리는 명령이나 올라 오는 보고 등이 빠짐없이 기록되었다. 현존하는 『승정원일기』는 기구의 명칭 변화에 따라 이름을 달리한다. 1623년(인조1) 3월부터 1894년(고종 31) 6월까지 272년 간 존속했던 승정원에서 처리한 기록은 그 명칭이 『승정원일기』이다. 이후 승정원이 승선원, 궁내부, 비서감, 규장각 등으로 개칭되면서도 기록을 이어갔으니, 조선이 망하던 1910년(융희 4)까지 총 3,243책이나 되 는 방대한 기록물을 고스란히 남겼다. 글자수로 따진다면 약 2억4천250만 자이니, 연대기 기록물로는 단연 세계 최대라 할 수 있다. 가령 중국의 『25사(史)』 같은 경우도 3,386책에 글자수 4,000만 자 정도이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조선왕조실록』도 888책에 5,400만 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하니, 조선 전 기에 해당하는 선조(宣祖) 이전의 『승정원일기』가 소실 되지 않았다면, 『조선왕조실록』의 10배 정도가 되는 기록물이라 할 것이다.
    사료적 가치를 따진다 해도 『조선왕조실록』이나 『일성록』 같은 다른 세계기록유산과 비교되지 않는다. 국왕이 승하한 후 사관들에 의해 편집된 『조선왕조실록』은 가공된 2차 자료이다. 그에 비해  『승정원일기』는 당대 의 정치·경제·국방·사회·문화 등에 대한 생생한 일들을 현장에서 기록한 1차 사료이다. 특히 갑오경장 이후에는 일제의 내정 간섭기에 접어들었기에 조선왕(황제)의 결재 과정이나 궁중 비화를 담은 근대사 연구의 기본 사료이다. 『승정원일기』는 17세기 이후 국문학의 변천 과정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60갑자로 표기된 『조선왕조실록』의 날짜 정보를 뛰어넘어, 60갑자와 수시력 역법의 일자를 동시에 표기하기에 양력 환산이 용이하도록 된 점이 특징이다. 
    당대의 국정 수행 과정에서 부닥치는 현안들에 대한 담당자의 생각이나 대응 방안은 물론, 이에 대한 위정자 지시사항까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러니 당시 정치 현안이 무엇이며, 그에 대한 대책이 어떻게 진행됐나를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다. 오늘날 녹음된 회의록 만큼이나 상세한 것임이 분명하다. 이를 통해 인물 개개인의 역량이나 정치사상에 대한 파악은 물론, 정책 수립이나 결정 과정에서의 타협과 절충, 그리고 충돌 양상까지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마치 현장 비디오를 보는 느낌이다. 이런 점들이 바로 『승정원일기』가 지닌 매력이다. 동시대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이 있다 한들 국왕 승하 후에 편집된 것이기에 현장감이 떨어지니, 그 가치로 따진다면 『승정원일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왕의 숨결까지 담아낸 책이 바로 『승정원일기』라고 회자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처럼 자세하고 방대한 『승정원일기』를 국정현장에서 항상 참고자료로 이용하던 것도, 공개하지 않는 『조선왕조실록』과 대비되는 또 다른 특징이라 하겠다.

 
(左)『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은 888책, 5,400만 자인데 비해 승정원일기는 3,243책에 약 2억 4천250만 자에 이른다.
(右)조선시대 국왕의 비서 기관인 승정원에서 발행한 과거시험 합격 통지서
 
기록 문화의 강국을 증명하는 우리의 유산
    2001년 『승정원일기』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이름을 올렸다. ① 3,245책에 약2억 4천250만 자의 방대한 내용, ② 천문 기상학 및 과학 자료로 이용 가능한 288년간의 날씨와 천문 현상들을 매일 기록한 점, ③ 288년간 작성됨으로써 장기간의 언어 변천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점, ④ 하루도 빠짐없는 일자 기록이 역산(曆算)의 기초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 ⑤ 당시의 정치·경제·국방·사회·문화 등에 걸친 종합적인 역사를 생생하게 담아낸 1차 기록이라는 점 등이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승정원일기』의 진정한 매력은 왜곡 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받아 적은 기록의 힘이다. 신진 엘리트 중에서도 엄선을 거듭하여 임명한 주서는 날렵하면서도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주서가 현장에서 받아 적는 1차 원고를 ‘초책(草冊)’이라 하는데, 주서 2명과 사관 2명에 게 기록을 분담하도록 한 때도 있었지만, 누락 염려 때문에 서로 대조하여 보충하는 방법을 택했다. 
    기록을 맡은 주서가 개작(改作) 혐의를 받으면 벌을 받아야만 했으니, 우리 선조들의 기록 관리에 대한 엄정한 자세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볼 때 4~5위권 기록 강국을 유지하는 것이 결코 우연에서 온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바로 기록한 어마어마한 분량의 내용들이 왜곡되지 않은 채 내려왔으니, 4백여 건의 세계기록유산 중에서도 백미는 단연 『승정원일기』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