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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시대사상과 역사를 품다

202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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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시대사상과 역사를 품다
'조선과 근대의 아동 교재 그 갈래와 흐름'

    구한말, 조선을 찾은 외국인들이 가장 경탄한 것은 조선이 바로 책과 교육의 나라라는 사실이었다. 비록 생활은 오두막살이의 곤궁함을 면하지 못하으나 교육에 대한 열정만큼은 대단했다. 일제 치하인 1917년 총독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국에 산재한 서당 수는 2만 4,274개, 학생 수는 26만 5천여 명에 이르고 있었다. 가히 교육의 나라라고 할 수 있고 외국인들이 놀라움을 표시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左) 천자문(千字文) 보물 제1659호     (右) 양정편(養正編)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8호 조선 인조 때 우복 정경세가 편찬한 아동용 수신 교과서이다.
 
교재의 분류 방식과 성격
    조선 시대 아동 교재의 종류와 성격은 다양하다. 그 이유는 교육을 시행한 각 가문이나 서당의 성격에 따라 서로상이한 교재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동의 학습 발전 단계를 기준으로 할 때, 크게 세 가지의 형태로 분류할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유학자 오당(吳堂) 이상수(李象秀)의 분류법에 따르면 문자학습(音而不釋) 단계의 교재, 훈석(訓釋) 단계의 교재, 소학 학습 단계(초학용 수신교재)의 교재로 대별된다.
아이들의 생애 첫 교과서, 문자학습용 교재
    조선의 아동들이 처음 대하는 교재는 주흥사(周興嗣)의『천자문(千字文)』과 박세무(朴世茂)의 『동몽선습(童蒙先習)』, 최세진(崔世珍)의 『훈몽자회(訓蒙字會)』 등이다. 이상수에 따르면 이 단계에서는 아동들이 그 음만 깨우칠 뿐 글 뜻의 해석에는 이르지 않는 단계이다. 이상수는 우리 말과 글이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으로 보고, 이 과정에서 착실한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 교재 중 조선의 모든 집에 비치하고 있던 책이 『천자문』이다. 그만큼 조선조 문화에 끼친 이 책의 영향은 엄청나다. 그러나 『천자문』의 단점은 아이들에게는 그 의미가 너무 어렵고 깊어 제대로 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었다. 다산은 천자문을 실패한 교재의 표본으로 지목한다.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문자교육용 교재의 교과서인 『유합(類合)』, 『훈몽자회(訓蒙字會)』, 『신증유합(新增類合)』 등은 모두 앞서 반포되었던 책의 결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편찬되고 있음을 공통적인 특징으로 한다. 최세진은 『훈몽자회』를 편찬하면서 종래의 한자 교육이 실제 경험세계와 동떨어져 왔음을 비판하고 한자 교육은 경험세계와 밀접히 연결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01. 해동속소학판목(海東續小學板木)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8호 조선 후기의 학자인 진계 박재형 선생이 고종 21년(1884)에 간행한 것으로, 128매가 있다.     02. 훈몽자회(訓蒙字會) 조선 아동들의 첫 교과서로 쓰인 최세진의 훈몽자회. 앞서 반포된 교과서의 결점을 극복하기 위해 편찬되었다.     03. 경민편(警民編)
 
생활상을 반영한 훈석(訓釋) 단계의 교재
    훈석 단계의 교재는 대체로 아동이 처음 한자의 자의(字義)를 이해하고 난 후, 본격적으로 경서를 학습하기 이전에 거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 교재는 자제, 혹은 향리의 아동들에 대한 직접적인 교육경험 속에서 간행됐기 때문에 당시의 생활상과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이상수에 따르면,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마친 후에는 증선지(曾先之)의 『사략(史略)』이나 강지(江贄)의 『통감절요(通鑑節要)』가 훈석 단계의 책으로 이용되었음을 알려준다.
    한편 조선조의 아동들은 이 단계 전후에 주자의 『소학』과 유사한 수준의 교재들을 학습했다. 우복 정경세(鄭經世)가 쓴 『양정편』의 발문에 의하면, 갓 입학하는 아들에게 『소학』은 지나치게 어려워 명나라의 『향교예집』을 수준에 맞게 산삭( 刪削)하여 책을 간행했음을 밝히고 있다. 조선 후기 이상정에 의해 작성된 『제양록(制養錄)』, 작자 미상의『소아칙(小兒則)』, 조선조 말에 박재형에 의해 쓰여진 『해동속소학(海東續小學)』, 일제 강점기 시대 최응교에 의해 작성된 『훈몽편집(訓蒙編集)』도 모두 이러한 범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중에서 몇 가지 사례들을 살펴보자. 저자가 미상인 『소아칙(小兒則)』은 상편과 하편으로 나뉘어져 있다. 상편은 아동들이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예절과 규범, 서당과 촌락사회에서 행해야 할 행동거지 등을 알기 쉽게 수록했다. 하편은 역사상 인물들의 선행과 가언을 수록했다. 또 다른 책 『동몽의학(童蒙宜學)』은 조선 말기의 문인 조종호(趙鍾灝)의 작품이다. 그는 1899년에 자손들을 위해 이 책을 찬술했다. 이 책은 자손들로 하여금 지식을 확대하고(擴知識), 나아갈 바를 바르게 하고(正趣向), 집안에서 덕의에 알맞은 교훈을 갖도록 하는(立義方) 세 가지 목표를 지니고 있다.

훈구파에 대항했던 『소학』 단계의 교재
    주자학적 가치체계에 의해 구성된 조선 시대에서 일반 백성과 아동의 교육을 위해 간행되는 교재용 서책은 매우 엄격하게 그 선택 및 간행에 신중했다. 가장 중요한 준거 기준의 하나가 곧 『소학』이 제시하는 구성체계이다. 특히 명륜(明倫), 경신(敬身), 입교(立敎)의 3가지 준거 기준은 조선조 교재의 3강령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종류의 교재로는 김성일(金誠一)의 『동자례(童子禮)』, 김정국(金正國)의 『경민편(警民編)』, 박재형(朴在馨)의 『해동속소학(海東續小學)』, 이상정(李象靖)의 『제양록(制養錄)』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에서 소학류의 성격이 물씬 드러나는 교재가 『경민편(警民編)』이다. 이 책은 중종조 기묘년(1519) 봄에 김정국(金正國)에 의하여 작성됐다. 관찰사로 재직 중이던 김정국이 도내의 어리석은 백성(蠢愚之民)을 대상으로 간행했으나, 뒤에 불학한 백성 및 부녀자, 동몽용으로 전국적으로 권장됐다.
    『경민편』이 저작된 시기는 기묘사화가 일어나기 직전의 시기이다. 김정국은 기묘사화 시 사림파로 지목되어 파직된 만큼, 그들 정치성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림파가 도학 정치를 표방하며 앞세운 서적이 곧 소학이었다.

근대 계몽기 교재와 교육개혁
    우리의 전통교육에서는 국가가 직접 교재를 간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국가가 교재 작성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갑오경장에서부터 비롯됐다. 이 시기에는 아직 관계 법령이 없을 뿐, 실제적으로는 일종의 국정교과서 형태를 띠게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교과서인 『국민소학독본』 과 『소학독본』, 그리고 『심상소학』은 학부가 최초로 간행한 아동용 교재 중의 하나이다. 최초의 교재인 『국민소학독본』은 1895년 음력 7월에 간행되었다. 책의 내용은 개화지식에 관한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특기할 만한 점은 국체(國體)에 대한 강조와 중국으로부터의 자주독립을 강조하는 내용이 상당히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뒤이어 그 해 음력 11월에 학부에서 간행된 책이 『소학독본(小學讀本)』 이다. 이 책은 이 퇴계, 송 우암 등 명현들의 덕행을 다섯 장으로 나뉘어 설명하고 있다. 다만 책의 주요 내용이 전통사회에서 중시되던 강상(綱常) 윤리를 배제하고 어느 시대에나 필요한 보편적 덕목을 유가적 관점에서 뽑아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심상소학』도 이 무렵을 전후하여 학부에 의해 간행되었다. 한성부 내 관립 소학교가 설립된 직후 학부에서 편찬한 최초의 교재 중 하나이다. 이 책은 일제의 영향력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심상소학』에서부터 교재가 국한문 혼용체로 바뀐 것은 우리의 교육사에서 획기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초학 아동이 학교에서 한글을 먼저 학습하기 시작한 것은 한자 문화권이었던 우리 사회가 전반적인 문화체계의 변동을 경험하게 됨을 의미한다.
 
(左) 유몽천자 광학서포에서 1909년도 간행한 유물로서 선교사 게일이 교육 사업의 일환으로 아동들에게 한자와 한문을 가르치기 위한 교과서로 저술하다.
(右) 호머 B. 헐버트(Homer B, Hulbert)미국인 선교사으며, 고종의 최측근 보필 역할 및 자문 역할을 하여 미국 등 서방 국가 들과의 외교 및 대화 창구 역할을 해왔다.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선교사 편찬 교과서의 의미
    선교사들에 의한 교재 편찬은 교과 내용의 다양성을 촉발하였다. 『유몽천자( 蒙千字)』는 구한말의 대표적인 선교사였던 게일(James Scarth Gale)이 쓴 책이다. 이 책은 구한말 눈부신 정치활동과 교육활동을 하였던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의 『사민필지』, 『대한역사』와 함께 선교사가 직접 쓴 대표적인 교재로 꼽힌다.
    『유몽천자』는 1891년 헐버트가 쓴 『사민필지(士民必知)』의 형식을 상당 부분 참고하였다. 다만 『사민필지』가 천문, 역사, 지리 등에 논의의 중심을 두고 있는 것에 비교하여 『유몽천자』는 좀 더 윤리와 도덕의 문제를 내용의 중심에 두고 있다. 그러나 서구 중심적인 인종적 편견이 자주 눈에 띈다. 『대한역사』는 1908년에 헐버트와 오성근(吳聖根)이 함께 엮어 펴낸 교과서이다. 이 책은, 중국사 중심으로 되어 있던 국사 교육을 한국 민족사의 재정립이라는 관점에서 기술하고 있다. 국사 교육의 목표를 문명개화와 주체적 민족정신의 함양에 두고 있었다. 비록 전근대적 한계를 보여 주고 있으나, 역사교육을 통한 국난극복의 이념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