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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처럼 은은한 매듭을 닮다

2020-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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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처럼 은은한 매듭을 닮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보유자 김혜순'

    단아하게 빚어진 매듭 아래 한올 한올 곧게 내린 실 가닥. 쑥 물을 머금은 잠자리가 사뿐히 내려앉은 공방에 일흔여섯 장인의 향기가 고즈넉하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묵묵하게 반세기를 동행해 온 김혜순 선생의 매듭들은 어느 것 하나 참하지 않은 것이 없다. 오랜 세월 순수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매듭장(每絹匠)은 조선시대 육조 가운데 공조에 속해 매듭을 만드는 장인을 일컫는다. 한 가닥의 실을 반으로 접어 중심을 잡고 두 가닥으로 균형을 잡아서 맺고 조여 하나의 무늬를 만드는 수법이나 형태를 매듭이라 하고,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매듭장이라 한다.


 


맑은 빛을 내는 매듭장인의 한길
    단아한 한복에 곱게 빗은 머릿결. 호흡 한 마디 한 마디에 오랜 세월 정돈된 기품이 배어난다. 어릴 적부터 노란색을 좋아하셨단다. 차분한 노랑. 집안 소파도 인테리어도 다 노랑으로 꾸몄다는 말씀에 “해맑은 소녀 같으세요.”란 말이 불쑥 나왔다.
    “그러니까 이게… 바보같이 사는 거죠. 평생 바보처럼 산 것 같아요. 남들은 놀러도 다니고 운동도 하고 부동산이다 뭐다 그러는데 종일 앉아서 이것만 하고 있으니까. 근데 좋은 걸 어떡해요. 팔십 넘어서도 하고 싶을 만치.”
    공방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매듭들에도 화려함보다는 은은함이, 넘치지 않는 절제와 순수함이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2017년 국가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보유자로 선정된 김혜순 선생이다.

 
(左) 횃대유소. 횃대유소에 표현된 아리따운 매듭으로 기본형인 도래, 나비, 국화, 가락지 매 듭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右) 소(簫)유소. 아악(雅樂) 중 문묘제례악(文廟祭禮樂)에 주로 쓰인 악기인 소에 장식된 매듭. 옛 궁중 에서 쓰인 악기에는 모두 매듭유소를 달았다. 제례악에 사용된 악기에 어울리게 엄숙 한 분위기를 진중한 색으로 표현했으며, 생쪽, 도래, 나비, 안경 등의 매듭을 간결하게 맺고 방망이술을 달았다.
 
단아한 선을 담금질하다
    널리 알려진 신윤복의 그림 <미인도>에는 매듭이 장식된 장신구를 찬 여인이 등장한다. 매듭은 조선시대 한복의 고운 자태에 멋스러움을 더했다. 맺는 모양에 따라 거북, 잠자리, 나비, 국화, 생쪽 등 동식물의 모양을 본뜬 38가지의 기본형으로 나뉘는 각양각색의 모양새와 빛깔, 우아한 선은 여인들은 물론이고 뭇 남성들의 시선을 붙들어 매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우리나라 매듭은 노리개, 주머니, 도포끈 등 작품의 용도에 맞춰 매듭을 수직으로 길게 늘어뜨리는 것이 특징이에요. 대개 끈이나 매듭의 아래에는 정성스레 술을 달아 그 아름다운 선(線)을 마무리하지요.”
    완성하는 데 한 달 반이 걸렸다는 ‘봉술삼작노리개’가 눈에 들어온다. 직접 염색한 명주실 타래로 끈을 짜 매듭을 짓고, 여러 가닥의 실을 한올 한올 꼬아 찜통에 쪄서 술을 만들어 잇는 지난한 과정의 연속이다. 순수한 열정 없이는 결코 완성하기 힘든 그 매듭과의 인연을 그녀는 반세기를 이어왔다.
    “크게 힘든 적은 없었어요. 그랬다면 여기까지 못 왔겠죠. 작품 하나를 완성하고 나면 마냥 좋았던 거 같고요. 남편의 도움도 적극적이었고, 돌아보면 제 길을 걸어오는 데 큰 장애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말 감사해요.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었으니까요.”

 
(左) 매듭장 보유자 김혜순     (右) 연(蓮) Lotus. 연꽃과 연못의 아늑한 풍경을 묘사해 현대화한 작품. 명주 헝겊에 그림을 그리고 그 위 에 매듭과 함께 수를 놓았다
 
자수에 스며든 매듭의 조화
    김혜순 선생은 본래 대학에서 자수를 전공했다. 1971년 가깝게 지내던 시누이 김희진 매듭장 명예보유자로부터 자연스럽게 매듭기술을 전수받게 되면서 전환점을 맞았지만, 여전히 자수는 그녀의 작품세계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2005년에 ‘매듭과 자수’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었었는데 반응이 괜찮았어요. 사람들이 자수에 매듭이 더해진 작품을 참 좋아하더라고요. 물론 조상님들의 지혜를 바탕으로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 내려온 우리 매듭을, 국가무형문화재로서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이 실로 막중하지만 여전히 자수 작업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매듭 과정을 살뜰하게 익힌 그녀는 금세 남다른 재능을 인정받았다. 1980년에는 스승이 만든 한국매듭연구회에서 강사 일을 시작했고, 차례로 이수자, 조교, 회장직의 수순을 밟았다. 국내는 물론이고 1983년 도쿄를 시작으로 뉴욕, 파리, 오사카 등 여러 차례 국외전을 개최한 바 있는 한국매듭연구회는 작년 창립 40주년을 맞아 제29회 회원전 ‘담다’를 개최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해 베트남, 독일, 베이징 등에서 특별전을 열었고, 가톨릭 성지인 프랑스 루르드박물관에는 그녀의 자수와 매듭으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성모를 표현한 성화가 봉헌됐다. 전통과 현대가 다채롭게 공존하는 우리의 매듭은 해외에서도 관심이 많다.

색과 비례로 예도를 완성하다
    “넘치지 않고 절제된, 너무 화려하기보다는 은은하고 고운 빛을 내기 위해서는 겸양의 어우러짐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야 좋은 작품도 나오고요. 매듭의 색이 서로 어울려 상생하고 마치 치마저고리처럼 그 비례가 절묘할 때 비로소 그 세계가 더 깊어지는 것 같아요."
    그녀가 매듭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색이다. 작가의 내밀한 세계는 색감으로 작품에 투영된다. 그녀가 제자들에게 유독 ‘겸손’과 ‘검소’한 삶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 외에는 언제나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한결같이 힘을 불어넣는다. 오랫동안 묵묵하게 그녀의 곁을 지켜온 든든한 제자들이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말하는 김혜순 선생은 전통공예, 특히 매듭에 관심과 애정을 표한 모든 분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매듭은 손끝의 재주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기(技)와 예(藝)를 함께 연마하는 예도의 길을 정진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성과와 결과에 조급해하기보다는 좀 더 끈기를 갖고 꾸준히 노력해 나가다 보면 어떤 길이든 어려움도 불가능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