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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수필] 눈부처

2020-11-18

문화 문화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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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수필] 눈부처
'글. 유병숙'

    현관문을 여니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려왔다. 시어머니와 딸은 이야기하느라 내가 들어서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몸을 숨기고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 



    “할머니 이건 뭐지요?” 
    “몰라. 잊어버렸어.” 
    “아휴 방금 가르쳐 드렸잖아요, 자, 다시 따라 해 보셔요. 이건 물병, 요건 컵!” 
    “이건 물병, 요건 컵.”
    어머니는 그제야 따라 하신다.
    “맞아요. 참 잘하셨어요.” 
    딸이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선생님이 된 손녀 앞에서 어린 학생으로 돌아간 노(老) 할머니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감돈다. 딸은 어머니에게 물건들의 이름을 가르치고 있었다. 
    알츠하이머를 앓기 전 어머니는 참으로 총명하셨다. 산야의 희귀한 나무와 생소한 꽃 이름까지 일일이 내게 알려 주셨다. 암산으로 계산도 잘 하셨다. 깜빡깜빡하는 나를 오히려 챙겨주셨다. 지금도 여전히 차분한 성격에, 귀도 밝고, 두서는 없지만 말씀도 잘하시는데, 의사는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의 크기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뜨겁다, 맵다, 싱겁다 등등 감각과 관련된 단어들은 온전히 구사하고 계셔서 그나마 다행이다. 
    머리를 맞대고 앉은 딸과 시어머니.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딸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던 오래전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딸아이는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말문이 터졌다. 맘마, 빠빠를 시작으로 아이스크림을 ‘아큼’이라 했고. 할머니를 ‘하니’, 할아버지를 ‘하지’라고 불렀다. 딸아이의 앙증스런 발음은 어머니의 부단한 노력 덕분이었다. 어머니는 딸의 최초의 말 선생님이셨다.



    강원도 고성이 고향인 어머니는 평소 사투리와 일본말을 섞어 쓰셨다. 국물을 ‘마룩’이라 했고, 누룽지는 ‘솥훌치’라 했다. 아이는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앵무새처럼 따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는 ㅁ자 발음에 서툴렀다. 라면은 ‘라년’, 그러면은 ‘그러년’이라 했다. 시어른들 슬하에 있는 나로서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속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사투리를 쓰는 어머니 탓이라고 원망도 했다. 그러다 어머니 몰래 병원에 데리고 가서 딸의 치아나 혀에 이상이 없는지 상담까지 했다. 그런데 의사의 말을 들어보니 ㄹ, ㅁ, ㅇ은 유아가 발음하기 어려운 부드러운 음절(유음)이라고 했다. 우리 딸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해서 어머니께 죄송했다. 
    내색은 않으셨지만 어머니는 은연중에 내 마음을 읽은 모양이었다. 손녀의 정확한 ㅁ자 발음을 위해 교정 연습과 반복 학습을 열심히 시키셨다. 또한, 표준말을 가르치느라 애를 쓰셨다. 그 노력 덕분인지 어머니 당신의 고질적인 사투리까지 서서히 교정되었다.  
    눈만 뜨면 책을 찾는 손녀를 위해 어머니는 당신 방을 아예 서재로 꾸미셨다. 어머니가 책을 읽어주다 말고 끄덕끄덕 졸고 있으면 딸은 처음부터 다시 읽어 달라고 칭얼댔다. 짜증 낼 만도 하건만 싱긋 웃으며 다시 읽어주셨다. 그 덕분에 아이의 어휘력도 쑥쑥 자라나게 되었다. 
    그러나 시댁 근방에는 유치원이 없었으니 딸을 위해 우리 내외는 분가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사 하는 말이지만 딸을 핑계로 분가하는 그때의 심정은 솔직히 하늘을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 마음과 달랐던 모양이다. 그날 이후 몸져누우셨다. 절간같이 적적해서 못 살겠다며 많이 우셨다. 
    일요일이면 어머니는 대문을 활짝 열고 밖에 나와서 손녀를 기다리셨다. 도착 시각을 알려드릴 테니 미리 나와 계시지 말라고 신신당부해도 막무가내였다. 우리 가족은 해뜨기가 무섭게 인왕산 자락에 있는 시댁으로 달려갔다. 집에서 시댁까지는 자동차로 겨우 십오 분 거리였는데 어머니는 한 시간도 넘게 서 계시곤 했다. 시누이들의 핀잔과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어떤 폭염이나 혹한도 어머니의 손녀 사랑을 막지 못했다. 조손(祖孫)의 만남은 흡사 이산가족 상봉을 방불케 했다. 뉘라서 둘 사이에 끼어들 수 있었겠는가.
    그 후 연로하신 어머니를 우리가 모시게 되었다. 그런데 어머니의 기다림 병은 더 심해지셨다. 사랑하는 손녀의 귀가 시간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되물으셔서 식구들을 성가시게 했다. 그러니 딸의 귀가는 점차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구순의 어머니는 시집갈 나이가 된 손녀를 아직도 어린 꼬마로 기억하고 계시다. 애틋했던 그 시절을 영영 잊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가 안쓰러워 여린 딸은 걸핏하면 눈물지었다.  
    기척을 하자 딸이 놀라 돌아보았다. 어깨를 으쓱하며 다가가 딸을 꼭 껴안아 주었다. 나는 이미 딸에게, 할머니께서 같은 말을 열 번 스무 번 물으시더라도 열 번 스무 번 대답해 드리라고 당부해 두었었다. 그 옛날 정성을 다해 어린 손녀를 가르쳤던 어머니. 손녀 사랑이 유별했던 우리 어머니. 이제 그 크신 은혜에 적으나마 손녀는 이렇게 화답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어머니 손을 잡았다. 마주 보는 어머니의 촉촉한 눈가에 따뜻한 미소가 산그늘처럼 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