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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경로우대

2021-07-21

문화 문화놀이터


삶의 풍경이 머무는 곳
[엽편소설] 경로우대
'글. 박순철'

    국내 이름 있는 산은 거의 올라가 보았고, 설악산과 공룡능선도 타보았다고 자랑하던 소갈 씨! 이제 아니다. 왕년에 잘 나가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으며, 왕년에 한주먹 한다는 소리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다 흘러간 세월이 안겨준 추억이다.
    모처럼 계룡산 등정에 나선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동학사를 들르지 않고 바로 남매탑을 향해 올라갔다. 남매탑을 돌며 가족의 건강을 빌었다. 기분이 한결 상쾌했다. 삼불봉에서 사방을 조망한 기분은 더없이 짜릿했다. 응달진 곳에 잔설이 남아있기는 해도 공주 갑사로 내려가는 길은 전만은 못해도 걸을만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계룡산의 기를 받아서 가능했으리라. 
    어제는 가뿐가뿐하던 발걸음이 잠을 자고 일어나자 천근만근 무거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무슨 큰일이라도 한 것처럼 과음한 탓인가 보다. 이럴 때 뜨거운 목욕탕에 몸을 담그면 피로가 풀렸다. 동네 목욕탕을 가려다가 기왕이면 가까이 있는 초정리에 있는 광천수가 떠올랐다. 주섬주섬 목욕 도구를 챙겼다.
    “목욕가세요?”
    “그래요. 당신도 같이 가요.”
    “어디로 가는데 그래요?”
    “초정 약수탕이나 갈까 해요.”
    “잘됐네요. 나도 목욕 가고 싶던 참이었어요.”
    전에는 손님들이 북적였었는데 조용하기만 하다. 평일이어서 그런가 보다. 요금표를 힐끗 쳐다보니 경로우대라는 문구가 보인다. 2천 원을 할인해준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두 사람이요.”
    “네.”
    카드에 찍힌 금액은 할인이 적용되지 않은 금액이었다.
    “경로우대 해주는 것 아닌가요?”
    “어머나! 경로이신가요? 전혀 아니신 것 같은데요. 사모님도 젊어 보이고 아버님도 아직 청년 같으세요.”



    계산대 여직원이 생글생글 웃으며 소갈 씨 부부를 관찰한다. 아가씨는 아닌 것 같고 그도 40줄은 돼 보였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려고 하던 소갈 씨 마음이 봄눈 녹듯 풀어진다. 사실 나이 먹은 게 자랑은 아니어도 혜택받을 수 있는 것은 받아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자신은 연금 수급자이기에 혜택받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버스나 지하철 속에서도 젊은 사람이나 학생이 앉아있는 앞에는 서 있지 않으려 노력한다. 가끔은 그런 소갈 씨를 알아보고 학생들이 일어서며 자리를 양보해도 한사코 거절하는 소갈 씨이다. 그런 학생을 보면 어느 집 자손인지 참으로 가정교육 잘 받았다는 생각과 함께 대한민국의 앞날은 밝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참으로 한심스러운 광경을 목격할 때도 적지 않다. 잠을 자지 않으면서도 앞에 나이 많은 사람이 서 있으면 자는 척하는 젊은 사람이라든가, 일부러 핸드폰에 열중하는 모습은 정말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다. 그래도 학생들의 그런 모습은 어느 정도 이해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공부하느라 얼마나 피곤하면 저럴까 싶어 안쓰러운 생각까지 들었다. 소갈 씨가 가장 못마땅해하는 모습은 나이도 그리 많지 않으면서 누가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나 하는 마음으로 이리저리 살피는 모습이라든지, 좁은 공간에서도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핸드폰으로 크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다시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민증 가지고 있으세요?. 경로우대 할인받으시려면 민증 보여주셔야 해요.”
    “그래요. 누가 목욕탕 오면서 주민등록증 가지고 다니겠어요. 안 가지고 왔어요.”
    “원래 안 되는 것인데 이번에는 경로 할인해 드릴게요. 다음에 오실 때에는 민증 꼭 가지고 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그 불같은 성격이 봄날 같다. 아직 청춘 같다는 말 한마디에 그처럼 기분이 좋아졌으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닌가 보다.
    목욕탕 안은 헐렁했다. 주말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었다. 띄엄띄엄 앉아서 때를 씻거나 열탕에서 열기를 즐기고 있다. 소갈 씨도 머리를 감고 샤워를 마친 다음 열탕에 몸을 담갔다. 따끈따끈한 게 정말 몸의 피로가 일시에 풀리는 듯하다. 
    초정리 광천수는 지하 100m의 석회암층에서 솟아나는 무균의 탄산수이며, 특히 노쇠한 세포를 자극하여 몸 안의 기능을 활성화하고 혈압을 정상화해 주고, 세종과 세조의 눈병·피부병·속병을 고쳤다는 기록과 함께, 고혈압·위장병·당뇨병·안질·피부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데워진 몸을 약수탕으로 옮겨 담갔다. 무척 차갑다. 한겨울에도 감기가 들지 않는다고 하지만, 소갈 씨는 겨울에 와서는 끼얹기는 해도 물속에 들어가지는 못한다. 몇 해 전 옻이 올라 고생할 때 이곳을 떠올리고 며칠 목욕 다닌 끝에 씻은 듯이 나은 경험이 있어 이곳 천연 약수의 효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소갈 씨이기도 하다. 
    약수에 목욕하고 나니 뻐근하던 다리도 씻은 듯 사라지고 기분도 더없이 상쾌하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조금 일찍 나온 듯하다. 그의 아내 목욕시간은 두 시간 가까이 걸리기에 언제나 소갈 씨가 먼저 나와서 기다리는 게 정석처럼 되어 있다. 아내를 기다리기 위해 매표실 입구 의자에 앉아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한 무리의 남자들이 목욕탕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아니! 아줌마! 듣기 좋은 꽃 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그러네. 혹시 머리가 이렇게 된 것 아니에요?”
    늙수그레한 사내가 자신의 손가락을 머리 위에 올려서 뱅뱅 돌려 보인다.
    “이 사람, 그래도 젊다고 하면 기분 좋잖아?”
    “좋긴 뭐가 좋아. 요금 더 받으려고 하는 수작이지?”
    한 사내가 기분이 나쁜지 불쾌한 말을 내뱉는다. 가만히 들어보니 지난번에도 경로우대가 아닌 줄로 알았다고 하더니 이번에도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이다. 언뜻 봐도 경로우대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죄송해요. 제 눈에는 정말 연세가 그렇게 많이 들어 보이지 않았어요.”
    손님들을 달래서 안으로 들여보내고 나서 매표원은 한숨을 짓는다. 
    “이제 그 방법도 통하지 않네.”
    “무슨 방법?”
    옆에서 빗자루를 들고 청소 준비를 하던 여자가 묻는다.
    “대부분 젊다고 하면 좋아했어요. 심지어 어떤 노인은 다음에 올 때 과일이나 과자를 사다주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젠 그 짓 그만해야 되겠어요.”
    ‘뭐야, 그러면 나에게도 그래서 경로우대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고 했단 말이야?’
    소갈 씨도 기분이 몹시 나빴지만 모처럼 시원하게 씻은 다음이어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전혀 못들은 체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